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옛날글] 아버님 전상서(2003년10월3일작성)

Story Board/준이네집 이야기

by hoon 2006. 9. 13. 08:20

본문

아버지. 저 훈입니다.

건강하신지요.

저도 아버님께서 염려해주시는 덕분에 무사히 멜본도 다녀왔고 건강합니다.

전상서라고 하니 좀 옛티가 나네요. 그래도 편안한 구어체로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무슨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전부터 꼭 써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거든요. 시간 없다는 건 사실 핑계지요...사실 아버지와 제가 길게 대화해 본 적이 없었지 않았습니까. 두려웠던 거지요...또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몰랐고...

한인교회에서 학생들 수련회를 인도하면서...그리고 돌아오면서...잛게나마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뭐 남들처럼 애뜻한 내용이나 개인적인 내용이 들어가리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이렇게 그냥 인터넷을 쓰고 있습니다. 불편하시면 제게 알려주세요. 지우거나 다음엔 메일로 보내겠습니다.

수련회는 약 90명 정도의 학생 청년들이 왔는데, 오랫만에 한국어로 설교를 해보니까 처음엔 어색한게 많이 나오더군요. 왜 지난번 안수받고 한빛교회에세 설교했던것 기억나시나요? 말이 꼬이고 영...어색 했는데...2박3일 계속 아침 저녁으로 설교하다 보니 폐회예배와 돌아와서 한 수요예배는 한국어가 아주 편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

수요예배를 마치고 축도를 부탁하는 그곳 교인들에게 사회를 봐주신 부목사님께서 축도하시는것이 올은것 같다고 사양했습니다. 원래 그 교회가 목사를 판단하는데 유명하거든요. 목사청빙하는데, 세분 목사님을 차례로 불러서 주일설교 시켜본 후 결정한 교회랍니다.

제가 떠난 후에 분명히 서로 비교하고 난리들 피울것 같아서, 그리고 부목사님 권위도 세워드릴 겸 축도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보내주신 담임목사님께 받는게 최고라고 그랬지요...그리고 저희 교회 교인들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부탁드렸더랬습니다. 목회하는 저를 위해 기도하는 것 보다 교인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지요.

생각하보면 목사는 하나님과 교인들 사이를 연결하는 다리로서의 역할 만 잘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목사가 하나님과 교인들 사이에 서면, 교인들이 목사뒤에 가려진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될 수 도 있거든요. 아버지도 제가 우리 교회에서 성도들과 하나님 사이를 가리는 일이 없기를 기도해 주시기 부탁드립니다.

참...

딸들이 걱정하던데...서울 올라오시면 교회출석이 뜸해지신다고요...그런데 교회출석이란 수유리 우이중앙교회를 말하는 겁니까?

저는 그러실 필요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는 이유는 하나님께 예배드림을 위함이지 특정교회나 목사 설교 들으러 가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가까운 아무 교회라도 찾아가서 예배 드리셨으면 딸들과 함께 저도 참 좋을 것 같습니다. 참, 제일 기뻐하실 분은 하늘에 계신 할아버지,할머니와 하나님이시겠군요. 물론 아버님 편하신 대로 하실 일이라 사료됩니다. 주제넘게 들리셨다면 부디 용서하여 주십시요.

그리고 한가지 더 흘려들은 이야기가 있는데...저의 의견을 말씀드려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말을 꺼냅니다.

시골 집 문제입니다. 우선 저는 아버님이 결정하시는 데로 따를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시던 그 결정이 가족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부족한 아들이 단지 하나님을 섬긴다는 핑계로 멀리 떨어져 살며 아버님 힘드실 때 도움이 되어드리지 못함을 무릅꿀고 사죄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진정 도움이 되어드리고 싶은데...제가 이곳에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서슴치 마시고 알려주십시요.

저는 이곳 사람들이 시골에 얼마나 있을 거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가 있고 싶은 만큼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만큼 있을 것이라구요. 그리고 만약 하나님이 저를 이곳에서 오래 붙드시며 교회를 섬기게 하시면 은퇴할 때까지는 이곳에 있을지도 모르겠다구요. 그렇지만 은퇴 후엔 전 제 고향으로 돌아간다구요...그건 하나님도 못말리실 거라구요...

어려서부터 방학마다 할머니 집에 가던거...아직 또렷히 기억합니다.

제가 비록 교회를 섬기는 목사라서 재정적인 도움이나 힘이 못되어드릴 지는 몰라도 장남으로서의 책임감 만큼은 절대로 포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준이와 세라에게, 특히 준이에게 이 고향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이 한국말 가르치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저는 돌아갈 겁니다. 제가 돌아갈 곳이 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서러움에 힘들때도, 동양인이라고 업신여김을 받을 때도, 영어가 안 늘어 가슴을 치며 괴로웠을 때도 견딜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6년반 전 이곳에 올 때 저는 제 사진을 다 챙겨오지 않았습니다. 물론 그땐 이렇게 오래 있을지 몰랐기 때문이었지만...제가 가져온 사진중에 제일 앞장엔 아버지 어머님 충무에서 찍으신 사진 그리고 뒤엔 송광 집의 사진이 있습니다. 힘들땐 낡은 집이지만 이 사진을 그냥 바라보고 위로를 얻는 답니다. 시골 냄새도 나는 것 같구요. 사진에 우물과 장독들도 나와있거든요. 그 다음엔 할머니, 고모들 사진이 있고요...외할머니 외가식구들 사진도 있습니다.

정작 제 사진을 안가져와서 준이엄마는 제 어릴적 사진이나 학생시절 사진을 아직 보지 못했지만 이 시골 집 사진만큼은 보았답니다.

아버지. 만약 아버지가 파시기로 결정하신다면, 제가 되살수 있는 곳이나 사람에게 파실 수는 없을까요? 경제적으로 제가 돈을 모은다는 것은 불가능이라기 보다는 목사가 해서는 안되는 일 중에 한가지 이겠지만 해야 한다면 하나님도 허락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고향에 돌아가서 묻히고 십습니다. 그리고 그럴 겁니다.

지금은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아들의 마음마져 고향에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옆에서 힘이 되어드리지 못함이 못내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 힘내십시요. 멀리서나마 기도하겠습니다.

Jeff가 오기로 한 시간입니다. 기억하시지요? 동년배이신...

사실 제프가 지난 몇달동안 교회에서 얼굴 뵙기가 힘들었거든요...잘 안나오십니다. 가족들이 다들 흩어져 있어서 그렇다고 이해는 하지만 어쩌면 저를 자신의 목사로 여기는 것이 아닌 것 같아 조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아서 차나 한잔 하지고 초대했습니다.

아버지가 옛날에 제게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목사가 되고 싶으면 진짜 목사가 되라고...

아직 진짜 목사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릅니다. 배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한 가지 지금 제가 생각하는 것은 목사의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에 관련해도 안되고, 또 너무 유명해져서 하나님과 성도의 중간에 서면 안된다는 생각입니다. 중세의 교회와 성직자가 그런 경우였지요. 사람들이 교회 뒤에 있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는 암흑의 시대...

이웃에게 작은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요.

참, 전에 아버지 오셨을 때, 식사기도 해 주셨잖아요. 기억나시지요?

저...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제가 들은 아버지의 첫 기도였거든요...참으로 은혜스럽게 기도를 하시던 아버지의 모습...속으로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울었는지....

못난 아들을 위해 계속 기도해 주실 거지요?

작은아버지와 고모님들을 위해서 저도 기도하겠습니다. 모든 일들이 화목하게 그리고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안수식때 읽었던 갈라디아 2:20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말씀으로 편지를 접어야 겠습니다.


아버지 ........

건강하세요...


2003년 10월3일

워락에서 아들 드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아멘.



추신:

글을 먼저 올려놓고 수정을 하다보니...오늘이 제 생일이네요...
왜 갈라디아서 2:20절 말씀이 떠올랐는지 몰랐었는데...

아버지, 어머니. 지금까지 낳아주시고 기도해주시며 길러주신 은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까이서 감사의 표현을 했어야 하는데...이렇게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